Christian Review 2014.03 - page 57

1858년3월23일교회는존페이튼부부를뉴헤브리
디즈선교사로임명하여파송하였다. 그리고그해4월
16일그는아내메리페이튼과함께남태평양으로향하
는항해를시작하여,같은해11월5일드디어뉴헤브리
디즈의타나섬에상륙하였고, 그후41년동안계속될
평생의식인종선교사역이드디어시작된것이다.
1858년 11월 15일존페이튼부부는타나섬에상륙
하였다. 몇몇 원주민들이 열정적으로 돕기는 했으나,
젊은 선교사 부부의 미래는 적어도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는전혀밝지못했다. 타나섬원주민들의족장
들은간교하고교활하며속임수에능하고잔인하며무
자비하며피에굶주린자들이었다.
그섬의원주민들의상황은정말눈뜨고는보지못할
만큼 처참하였다. 부족들끼리 전쟁을 하면 승리를 거
둔부족이패한부족의사람들을죽이고그시신을삶
고구워먹으며승리를자축하였다.
그리고남자가죽으면그아내를목졸라죽였다. 그
아내의영혼이남편을따라가내세에서도그를섬기게
한다는것이었다. 남편은사냥과싸움외에는아무것
도하는것이없었고,집안의모든힘든일은아내의몫
이었다.
무슨이유든아내가남편의기분을상하게하면때리
고싶은만큼아내를때릴수있었다.그러다나이가들
어서일을할수없게되면굶겨죽이거나처참하게죽
여 버렸다. 또한 형형색색의 우상들과 부적들이 사방
에널려있었고, 원주민들은그것들에대한공포와두
려움에항상짓눌려있었다. 패이튼은이렇게말한다:
“로마서 1장에나타나는그사탄의깊은면면이그들
의일상생활에서적나라하게우리눈앞에드러나고있
었다. 갖가지색으로온몸을장식하고벌거벗은채비
참하게살고있는이원주민들을바라보면서안타까움
과함께공포가마음에가득했다.”
타나 섬에 상륙한 그 이듬해 2월 12일 이 젊은 선교
사 부부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잠시, 도저히인간적으로견딜수없는고통이
다가오고있었다. 타나섬에대한사전지식이전혀없
었던페이튼부부는그만한가지치명적인실수를범
하고말았다.
해변가까이저지대에다거주할집을지었는데, 그런
저지대가열병과오한의온상이라는것을몰랐던것이
다. 후에이런실수를발견하고고지대에다시집을지
으려 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남태평양의 고도에
서홀로아들을낳으며극심한산통을겪느라지칠대
로지친메리에게극심한열병과오한, 폐렴과학질등
의증상이찾아왔다.
아내와아들의죽음
메리는두주간동안정신이몽롱한상태로고통을겪
다가 3월 3일결국세상을떠났다. 게다가엎친데덮
친격으로갓난아들도병으로한주간동안고생하더
니 3월 20일세상을떠난것이었다.
모든것이캄캄했다. 하나님을섬기고자하는열정으
로복음을위하여머나먼뉴헤브리디즈군도까지왔는
데여기서사랑하는아내와핏덩어리같은아들을한꺼
번에 잃었으니, 그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이 어떠했겠
는가? 그는북받쳐오르는슬픔을삼키며손수무덤을
파고두사람의시신을매장했다.
그 이후 이 묘지는 그에게 너무도 소중한 추억의 장
소가되었고, 틈만나면그곳을찾아그때를되돌아보
게 되었다. 페이튼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께서 친히 그렇게 분명하게 나를 인도하셔서 이
사역의현장에들어왔는데이처럼끔찍하게아내와아
들을잃고보니, 한동안거의이성을잃을지경이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주께서 항상 나를 지켜주셨
다... 먼훗날타나섬이주께로돌아올때까지도이장
소에 대한 기억은 생생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
을것이다. 이땅이 - 믿음과소망으로‘나의죽은자
들을묻은’이땅이-하나님의것임을이장소에서끊
임없는 기도와 눈물로 아뢰었다. 그때 예수님이 내게
확신을 주시고 나를 지켜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미
쳐버렸을것이고슬픔과외로움을견디지못하고무덤
옆에서죽어버렸을것이다...〠 <계속>
원광연
본지편집위원
식인종들의 사도 존 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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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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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철거
되기 전까지 페
이튼이 거주하
던 주거지와 유
사한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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