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ristian Review
경주의 최 부잣집과 함께 조선말 쌍벽을 이루던 명문 가인 고창의 김 씨가의 예전 땅들을그후손인 낫소그 룹의 김병진 회장과 함께 돌면서 그 집안의 역사를 살 필 기회가 있었다. 명문가의 명당을 살펴 본 후 다음은 그 집안 조상들 삶의 흔적을 알아보았었다. 그게 이천팔 년 오월 말경 부드러운 봄바람이 불 무렵이니까 벌써 십이 년 전이 었다. 고창 부자 김 씨가의 땅은 전라도 오십삼 개 군 에 걸친 방대한 지역에 걸쳐 있었다. 명분가의 부는 아직도 삼양사 그룹과 경성방직 그리 고 동아일보와 고려대학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토지개 혁으로 몰수된 땅을 제외하고도 염전이나 임야가 엄청 나게 보존되고 있는 것 같았다. 김 회장과 나는 그 집안의 지역 관리인이 운전하는 짚차를 타고 그 집안 소유였던 땅을 돌고 있었다. “조선 최고의 부자이고 명문가 자손으로 살아온 감 상이 어때?” 내가 친구 김 회장에게 물었다. “나뿐만 아니고 우리 집안의 남자들은 남들이 그래 서 그런가 보다 하지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감정을 느 끼지 못하고 살아왔어. 고조부나 증조부 조부 모두 무 서울 정도로 검약하시던 분이야. 고조모인 정 씨 할머니는 장작 한 개피를 아끼느라 고 얼음이 얼어붙는 방에서 베를 짜서 논을 한 마지기 씩 사모았던 분이지. 아들인 증조부는그때 조선 최고 부자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손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 채구녁에 떨어진 밥알을 주워서 물에 씻어 직접 드신 분이야. 본을 보이신 거지. 한국인 최초로 재벌 회장이 되신 조부는 식사 때 세 가지 반찬만 하라고 지시하고 절대 반찬이 남으면 안 된다고 했어. 그 명령에따르느라우 리 집사람부터 며느리들이 고생했지.” 그 집안을 연구한 논문들이 여럿 있었다. 한국의 농 학자들이나 미국의 학자들은그들을한국프로테스탄 트의 시조라고 평가했다. “명문가를 상징할 수 있는 또 다른 집안의 특징이 있 다면 말해봐.” 내가 물었다. “우리 집안에서 어떤 아들도 병역 면제를 받은 남자 는 없어. 6.25 전쟁 때 할아버지는 아들들이 빨치산이 나 공산당과 싸우게 했어. 부자집 아들이라고 뒤로 빼 돌리지 않았지. 숙부 중에는 군대에 졸병으로 가서 몽둥이로 얻어맞 는 기합을 받다가 머리를 다쳐 불구가 되신 분도 있어. 네가 알다시피 나도 대학 일 학년을 마치고 졸병으로 군대를 갔잖아? 그때만 해도 저녁이면 구타가 없는 날 엄·변·호·사·의·세·상·읽·기 명문가의 특징 엄상익 크리스찬리뷰 57 62 Christian Review ▶경주 최부잣집 종택전경(경주최 부잣집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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