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ristian Review

1918년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세상을 흔들기 시작했다. 스페 인 독감이 뉴질랜드에 상륙한 것을 알고 호주는 입항 하는 모든 배는 반드시 검역소에서 7일간 격리해야 함 을 공포하였다. 1918년 10월 RMS Niagara 호가 첫 번째로 격리되었 다. 1918년 11월부터 1919년 3월까지 110척의 승객 1 만 2천 명 이상이 노스 헤드 검역소에 격리되었다. 동 시에 13척이 격리된 적도 있었다. 당시 15척의 배가 감 염되었고, 70명이 죽었으며 이 중에 검역소 직원도 있 었다. 검역소에서 일하던 27세의 Annie Egan 간호사도 죽 었다. 백신을 접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착 다음 날 Medic호의 병사들을 돌보다가 1918년에 11월에 전염 되었다. 그녀는 죽기 전에 가톨릭 신부에게 종부성사 를 받기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연방정부는 감염 위험 가능성 때문에 신부가 검역소 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고,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12월 10일에 허락 을 하였다. 하지만 12월 3일,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 람이 아니었다. 1919년 1월 스페인 독감은 검역소를 넘어 시드니 지 역 주민도 감염되었다. 가족들은 전쟁에서 돌아온 검 역소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오직 신문 을 통해서만 검역소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1919년 1월 초 1차 대전 종전 후 귀국하는 병사들 중 2천500명이 격리되었다. 격리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자 검역소의 질서를 위해서 경찰은 물론이고 군 대까지 동원하였다. 집으로 갈 수 없는 병사들은 답답 한 하루하루를 그곳에서 보내야만 했다. 참고로,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교전국들은병사들이독감으로죽어도사기 저하가될 까 두려워 서로 침묵하고 있었다. 중립국이었던 스페 인은 독감에 대하여 상세하게 보도하였다. 독자들은 독감이 마치 스페인에서 시작된 것처럼 착 각하여, 독감을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이라고 명명 하게 되었다. 1920년 의학의 발전으로 1920년 이후로 검역소는 아주 다른 상황에 접하게 되었다. 스페인 독감을 마지막으로, 1921년부터 1975년까지단지 55척만격리되었고, 1925 년에 결핵 걸린 선원 한 명과, 1962년간에 문제가 있었 던 승객 한 명이 죽은 것이 전부였다. 검역소는 낚시, 수영, 레크리에이션 등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1930년 Aorangi호의 선원 한 사람이 천연두 증세로 배가 격리되었을 때 승객 중 Archibald Howie는 그때 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그곳은 정말 좋은 곳입니다. 우리가 격리되었다는 사실만 잊고 있다면, 휴가를 지내기에 딱 좋은 장소입 니다.” 크리스찬리뷰 25 34 Christian Review 시드니의관문인QStation의발자취를찾아서 ▲현대천연두예방접종키트. 희석액, 바키니아왁친병, 분지침등의 구성요소로되어있다.(상). 아래는 분지침을 사용해 천연두 백신을 놓은 모습(2002년) ▲유럽에서 새로 도착한이주노동 자들. 그들의개인 수하물들은 엄격 한오염제거과정 을 거쳐 구제역이 호주에 들어오지 않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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