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ydney Korean Herald
MAIN NEWS The Korean Herald 5th JUN 2020 A38 우리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시대별 로 누적된 갈등요소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친일과 항일 로갈라졌고, 그후는민주주의의남과공 산주의의북으로나뉘어동족상잔의전쟁 까지 치렀다. 반공을 앞세운 독재시대를 거치면서는 민주화 세력이 생겨났고, 산 업화를앞세운독재통치시대에서는특권 층이형성되면서민주화운동이특권층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해소하자는 사회운 동으로 발전하였다. 민주화가 완성된 시 점에서는그간의경험과배경을바탕으로 모여든정당들간의정권투쟁이계속되면 서 여와 야가 교체되는 변화를 만들어 냈 으나 이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사라 진 것이 아니라 특권계층이 사회전반에 나타나면서 두터워졌고 대물림하는 현상 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갈등이 매 우복합적인양상을보이고있지만이를7 가지로정리해보았다. 1) 일제강점기가남긴친일갈등 조선 말기, 조정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19세기말 마지막 남은 식민지 시 장인아시아지역에세계열강들이몰려들 었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선진국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일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을 막아 낼 힘이 없었던 조선은 ‘누구에게 의탁 하여나라를보전할것인가’를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마저도 일본의 간계로 기회 를잃어버리고일본에게나라를빼앗기고 말았다. 고조선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이온전히타민족에게넘어가는수 치스러운일이발생했다. 나라를넘기자고주장했던쪽은다양한 변으로자신들을합리화하면서일본이주 는 혜택을 누렸고 해방 후 그들의 후손까 지도그덕을누렸지만, 나라의주권을지 키고 회복해야한다는 쪽은 일본의 탄압 속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목숨을 잃 기까지 했고, 그들의 후손들 역시 재산도 교육도 다 포기하는 고난을 함께하면서 해방 후에도 가난을 면치 못했다. 정부를 수립하는과정에서일본에부역하며경험 을 쌓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곧바로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공산잔당의처리에힘을쏟느라친일세력 을 청산한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보니 세 월이 가도 친일청산이란 이슈가 틈만 나 면수면위로떠오른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과정과 통치, 해 방 후의 처리까지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기억일 수밖에 없기에 이번 정부에서는 친일은 심지어 남침전범 전력보다도 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정도다. 북쪽 정권의 수립에 참여하고 남 침을지원했던김원봉은국가유공자로고 려될 수 있으나 우리민족이 힘을 키울 때 까지는일본통치를수용하자는민족개조 론을 내세우며 친일했던 이광수는 그 이 름이 용납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다보 니친일의전력은대한민국의건국과정에 서, 남침전쟁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어떠 한 공을 세웠던지 그 죄과가 상쇄되지 않 는다. 친일시비 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2) 6.25전쟁이남긴안보와친북이념갈등 20세기초러시아에서공산혁명이성공 하고중국에서공산당이세력을확장하면 서 일제치하에 있던 지식인들은 새로운 정치이론에 관심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독립운동에참여한인사들중 에서도상당수가공산주의사상을가지고 있었으나 일본이라는 큰 적을 물리침에 있어서 타협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남쪽에 자유민주 진영의 대표인 미국이, 북쪽에 공산주의 의 맹주인 소련이 진주하게 되면서 남과 북모두에서민주진영과공산진영은본격 적인 세력다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진주한미군과소련은자신들을지지하는 정권을 각각 세우게 되고 다른 진영을 탄 압하게되면서갈등은폭력적으로나타났 다. 특별히 공산진영인 북한이 적화통일을 위해남침을도발하면서치러진 3년이넘 는 전쟁기간동안 남한에서만 170여만명 의사상자와행방불명자를만들어내어전 체 국민 모두가 연관되지 않는 사람이 없 을정도로큰상처를남겼다. 전쟁이승자 도패자도없이전쟁전과거의비슷한경 계를 만들고 휴전해버리자 끝나지 않은 전쟁이되어버려누구에게도책임을물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북쪽은 언 젠가는 남쪽을 자신들의 공산이념에 꼭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우리남쪽의머리위에놓여진숯불이되 었다. 결과적으로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군사적 무장을 강화될 수밖에 없었고 안 보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남쪽에서는북쪽과관계된사람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 뿐 아니라 이에 관심을가지는자까지도색출하여처벌하 였고북쪽에서도동일한숙청이이루어지 면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화를 당하면 서이념갈등은더욱심화되었다. 3) 독재갈등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 해야하는 책임을 맡은 이승만 정부는 미 국에더욱의존하면서공산세력을몰아내 고 전쟁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독 재를 시작했다. 독재에 부역한 이들 중에 는 친일을 의심받는 이들이 섞여있었다. 이로 인해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등에 업 은 독재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이에 항거하고민주주의의실현을추구하던인 사들은민족민주화세력으로구분되게되 게되었다. 이 투쟁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끝 나지 않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개발독재에대한항거로이어지면서갈등 의 구조가 정착되어 버렸다. 군부독재세 력은 세계최빈국인 이 나라가 살길은 다 소의희생이따르더라도경제발전을이루 어내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잘 살아보 세’구호하나로20여년가까이를집권했 다. 민주화 세력은 쿠데타도 군부독재도 인정할 수 없었다. 군부의 개발독재가 지 속되면서특권층과노동자계층이생겨나 게되자갈등의양상은민주와독재, 특권 층의 부정과 부패, 노동약자의 보호 등이 뒤섞이면서복잡하게얽혀지기시작했다. 여기에더해독재지배계층이반공사상을 중시하자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운동에 북쪽과의관계개선을통한통일문제를끌 어들였고 결국 반독재갈등은 이념문제까 지연계되게되었다. 군부의 개발독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 서집권세력도만만찮은지지기반을확보 하였고 민주화 세력도 부동의 지지 세력 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렇게 견고해진 양 측은정치세력화되었고군부독재가종식 된이후에도상대방을서로무너뜨려야할 적정도로생각하면서정권을잡기위해서 는각자의지지기반이가진갈등요소들을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정권다툼이극단적인국민간의길거 리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나라 전체가 방 향을잃게만들고있다. 특/별/칼/럼 한헌수 숭실대학교교수, 전총장 기독청년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리더십 1.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갈등과 해결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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